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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란...

wafe 2009. 5. 28. 22:35
캡콜님께서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적인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그저 신격화만해서는 우리에게 남을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의 '6조 전설보다 시스템'이라는 글을 쓰셨다.

나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서는 그저 말끝마다 김대중 노무현을 욕하기 바쁘신 어르신들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내가 정의롭고 멋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내가 정의롭고 멋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의식 수준이 발전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요즘 읽고 있는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시민 씨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 관련된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켰던 국민들과의 정서적·정치적 불화가 주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사회적·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재신임, 사임, 임기 단축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율이 너무 낮은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한된 권력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언론,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평적인 다툼이나 권한쟁의를 벌이면서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것을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이라고 생각했다. ...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무거운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소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주권재민의 원리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왕을 죽인 나라는 프랑스 말고도 많다. 대한민국은 왕을 죽인 적이 없는 나라다. ... 제헌헌법 제 1조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대통령은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와 '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데 헌법적·법률적 제약 조건을 받아들이고 5년 계약직답게 행동하는 대통령은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하는 백성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어서 인기를 잃는다. 사실은 계약직 공무원이면서 마치 왕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은 권력 오남용을 거부하는 시민의 저항과 비판에 부닥쳐 인기를 잃는다. 우리 사회가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